현대차 등 車기업 자사 충전소 구축…삼성·LG·롯데 등도 참전

서울 강남구의 한 주차장에서 전기차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강남구의 한 주차장에서 전기차들이 충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기차 수요가 본격적으로 높아지면서 전기차 충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 굴지의 대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전기차 충전 시장은 그동안 중소기업들의 사업 영역이었다. 정부가 주도하고 공공시설 중심으로 중소기업의 전기차 충전 시설이 들어서는 형태가 많았던 것이다.

전기차가 35만대 가까이 보급됐지만 한국 충전 인프라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시장 진입 장벽도 낮은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기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보급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물론, 삼성·SK·LG·롯데·한화·GS 등 10대그룹 대부분이 전기차 충전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전국 급속 충전소 ‘올인’ 현대차그룹
테슬라, 국내에 ‘슈퍼차저’ 설치 박차

전기차 보급 속도와 전기차 충전 시장의 확대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차 사용자들은 일반적인 충전 시설 설치를 넘어 급속 충전 시설의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글로벌 컨설팅사 롤랜드버거는 세계 전기차 충전 시장 규모가 내년에 550억달러(약 73조원)에 이르고 2030년에는 3250억달러(약 430조원) 규모로 6배나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지난해 3월 전기차 초고속 충전 브랜드 ‘이피트’(E-pit)를 출범시키며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생태계 육성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국 주요 도심에 초고속 충전기 총 5000기 설치를 목표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완속 충전 비중이 높은 국내 충전 시장에 초고속 충전 인프라를 대거 확충한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 12개소와 도심지 9개소에 충전기 총 120기를 구축했다. 전기차 아이오닉5 기준으로 18분 내 80% 충전할 수 있고 15분 충전하면 약 301㎞ 주행이 가능하다. 보통 급속 충전기 이용시 평균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르게 충전이 가능한 것이다.

기아는 전기차 충전 스타트업 티비유와 함께 전기차 구매자의 충·방전 에너지 거래 실증에 나선다. 이를 위해 기아는 지난 21일 티비유와 ‘차와 차’(V2V) 급속 충전 신기술 기반 에너지 거래 솔루션 실증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V2V 급속 충전은 전기차끼리 서로 급속 충전을 가능케 하는 기술로, 전기차 충전구끼리 케이블로 연결하면 충·방전이 가능하다.

기아 관계자는 “현재 시중에서 제공 중인 트럭을 활용한 이동형 충전 서비스 대비 충전 시간과 차 개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한 V2V 급속 충전 신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상용화될 경우 기아 전기차 구매자는 충·방전 전력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럭셔리형 충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전기차 전용 충전소를 개소하고 발레 파킹, 라운지 제공 등 운전자의 피로를 덜 수 있는 부가 서비스를 내세운 것이 차별점이다. 현재 무선 충전 서비스 시범 사업도 운영 중이다.

이 밖에 해외 기업 중에는 테슬라가 국내에 자사 충전소인 ‘슈퍼차저’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 설치된 슈퍼차저 충전소 수는 100곳이 넘는다. 현재 60곳이 넘는 지역에 슈퍼차저 충전소를 설치 중이다. 테슬라가 슈퍼차저를 다른 전기차에도 개방키로 하고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는 작업에 나선 가운데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슈퍼차저는 4만곳을 돌파했다.

국내외 M&A 통해 충전 거점 활용
계열사 인프라 기반한 서비스 확장

전기차 충전소를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핵심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새로운 대기업들이 이 전기차 충전 시장에 속속 올라타고 있는 이유다.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을 인수하거나 계열사 인프라를 통한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SK그룹은 적극적으로 전기차 충전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단 지난해 4월 전기차 충전 장비업체 시그넷브이를 2930억원(지분 55.5%)에 인수해 SK시그넷으로 사명을 바꿨다. 해외 전기차 충전기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SK E&S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기 4600기를 설치·운영하는 에버차지를 인수하기도 했다.

삼성화재는 지난 8월 중순부터 제주도에서 ‘전기차 이동충전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고객이 직접 충전소에 갈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면 삼성화재 충전 서비스 차량이 직접 방문해 비대면으로 전기차를 충전해 주는 온디멘드(On-Demand, 수요가 모든 것을 결정) 서비스다. 삼성화재는 내년 7월까지 시범 서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LG그룹과 GS그룹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GS에너지와 손잡고 지난 6월 애플망고를 공동 인수했다. LG전자가 지분 60%, GS에너지와 GS네오텍이 각각 34%, 6%를 취득했다. 애플망고는 완속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까지 전기차 충전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번 인수로 LG전자의 전기차 관련 사업 포트폴리오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큐셀의 경우 ‘한화모티브’라는 신규 브랜드를 출시하며 전기차 충전 사업을 시작했다. 한화모티브는 지난 5월부터 한화 계열사 건물 주차장 및 상업용 빌딩 주차장을 시작으로 전기차 충전 사업 고객층을 다각화하고 있다. 한화모티브는 충전 사업자로서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시공은 물론 초기 컨설팅, 투자, 사업 운영, 유지·보수를 아우르는 토털 서비스를 충전소 설치 희망자에게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롯데그룹은 초고속 충전기 보급 확대를 위해 전국 도심 내 롯데그룹 주요 유통 시설을 초고속 전기차 충전기 설치 부지로 제공한다. KB자산운용은 인프라 펀드를 조성해 재무적 출자자로서 투자하고 전기차 초고속 충전 인프라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협업을 추진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전기차 보급 의지가 확고하고 한국 전기차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는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며 “기존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대기업이 침범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국내 소비자의 강한 요구와 여전히 부족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감안하면 제조·서비스·관리 등에 장점이 있는 대기업의 이 시장 진출은 필연적”이라고 진단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