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겨냥한 법에 유탄 맞은 美 동맹국들…IRA 불만 고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이른바 자국 우선주의 법안을 쏟아내자 한국에 이어 미국과 공고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국, 유럽연합(EU), 일본이 공동 전선을 구축해 IRA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사안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EU와 일본이 미국의 IRA 법안 등에 대응을 서두르면서 형성된 분위기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법이지만 한국 등 다른 동맹국들의 전기차·배터리 업계가 유탄을 맞게 된 것이 문제다. 이에 우리 정부는 미국의 IRA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지원 제외 문제를 미국 측과 협의키 위해 정부 합동 대표단이 지난달 29~31일(현지 시간) 미국에 도착해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IRA 법안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우리 정부 혼자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침 EU와 일본이 뒤늦게 IRA 법안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그런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EU도 미국에 대응키 위해 ‘배터리 여권’을 중심으로 유럽 중심 공급망 장악에 들어가면서 한국의 전기차배터리 업계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어 다각적인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우려 커져…한국과 EU, 일본 공동대응 필요

IRA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에서 최종 생산·조립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또 미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을 사용한 전기차만 보조금 혜택을 지원할 수 있는 내용도 담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법이지만 미국 내 중산층을 부흥시키기 위한 목적이 사실 더 크다. 전기차와 배터리가 주력 산업인 국가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으로 인한 공급망 생태계가 근본부터 바뀌어야 하는 상황을 겪을 수 있다.

IRA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대응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EU는 미국 IRA 법안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정의한 규범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이 최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유럽산 전기차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돔브로우스키스 집행위원은 “EU는 기후 행동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친환경적 조치가 차별적 방법이나 WTO와 양립하지 않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도 뒤늦게 대응에 나서면서 날을 세우는 모습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7일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에게 “일본 브랜드의 전기차 판매가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번 조치가 WTO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주미일본 대사관 측도 미국 현지 언론 매체를 통해 “더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한 양국간 논의가 진전되는 가운데 이 같은 조치가 나온 것에 대해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당초 일본 정부는 IRA 법안 서명 직후 도요타에 유리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더 나은 재건법’(BBB)이 IRA로 바뀌는 과정에서 노조가 있는 브랜드가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삭제된 부분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도요타보다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1, 2위인 테슬라와 현대차·기아에 더 유리하다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우리 정부도 당초 IRA 대한 늦장 대응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EU와 일본도 마찬가지 상황에 닥친 셈이다. 따라서 뒤늦은 대응에 나서고 있는 EU, 일본 등 FTA 협정 체결 국가들은 물론, 미국 내 기업들과도 협력해 IRA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롯해 핵심 광물 생산국인 호주, 캐나다, 칠레, 인도네시아와 광물 공급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기업과 정부는 미국 정부에 IRA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 보완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미국 기업과 기술, 자본 협력 등을 확대할 수 있도록 미국 기업의 전략과 산업 동향을 분석해 세부적인 협력 전략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유럽 ‘배터리 여권’ 등장도 우려…EU ‘새로운 배터리 규제’ 시행

IRA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IRA를 통과시켜 전기차·배터리와 관련한 공급망 장악에 나섰다면 EU는 ‘배터리 여권’을 중심으로 공급망 관리에 돌입했다.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EU가 2026년부터 ‘새로운 배터리 규제’(New Batteries Regulation)를 실시한다. 이 규제안은 유럽의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 전략인 ‘그린딜’ 정책의 일환으로, 특히 배터리 여권 도입이 주목받고 있다. 

배터리 여권은 세계 배터리 동맹(GBA)이 2020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제안한 디지털 플랫폼이다. 이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 ▲배터리 제조 이력 ▲성능 업그레이드 이력 ▲배터리 수명 연장 및 재활용 데이터를 담아 향후 배터리 수요자가 여권에 기재된 정보를 신뢰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EU는 환경 규제를 명분으로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규제안을 살펴보면 배터리 재활용 원료 함유량을 공개해야 하고 탄소 감축에 따라 배터리를 생산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살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2026년부터 배터리 여권이 부착된 배터리만 유럽에서 유통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아직 우리나라가 디지털 이력 추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유럽 국가들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은 배터리 여권 부착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일본은 본인들의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 이를 EU에 제시했고 중국은 이미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해 활용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5일 우리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를 전기차와 별도로 등록해 배터리 전 생애주기 이력을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담아 관리할 수 있도록 ‘자동차관리법’ 개정 추진 계획을 내놓고 배터리 이력 관리 기반 만들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배터리 생산과 재활용을 아우르는 시스템 구축까지는 시일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중국이 이미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한 상황은 뼈아픈 지점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각국의 배터리 여권 대응 동향을 벤치마킹한 한국식 배터리 이력 추적 관리 시스템을 조속히 갖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