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합동 대표단 파견 등 ‘뒷북’ 외교전

한국 전기차 차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한국 정부대표단의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가운데)이 지난달 31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 전기차 차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한국 정부대표단의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가운데)이 지난달 31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미국의 이른바 ‘전기차 보조금법’으로 불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대응이 분주하다. 이 법은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에서 최종 생산·조립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법이지만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가 유탄을 맞게 된 것이 문제다. 

이에 미국의 IRA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지원 제외 문제를 미국 측과 협의키 위해 정부 합동 대표단이 지난달 29~31일(현지 시간) 미국에 도착해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대통령실도 지난 1일 미국의 IRA가 한미 안보 수장 논의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함께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김 실장이 IRA와 관련해 우리 업계의 우려를 전달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외교·통상 대응이 늦장 대응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외나 민간 기업에 비해 기민한 대응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열린 현대자동차 및 국내 배터리업체와의 간담회도 IRA 법안 통과를 염려한 국내 산업계 요청이 먼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IRA 입법 절차가 빠르게 이뤄져 미리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자동차산업 등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할 때 정부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돈 내놓고도 당한 한국산 전기차…미국 내 판매량 2위도 당장 위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제조업체인 마이크론의 신규 반도체 공장 투자에 대한 성명을 통해 “마이크론의 이번 발표는 미국을 위한 또 다른 큰 승리”라며 “우리는 전기차, 반도체, 광섬유, 기타 핵심 부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 산업 물자를 미국 안에서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한국 자동차업계 입장에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공포한 IRA는 미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을 사용한 전기차만 보조금 혜택을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등은 한국에서 생산한 후 수출하고 있어 이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IRA의 당초 입법 취지와 별개로, 한국은 미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의 판매량 2위 자리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IRA의 보조금 차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보조금 등에서 상대국을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는 ‘내국인 대우 의무규정’에 명백히 위배된다. 한국 정부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전혀 개의치 않는 상황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전기차를 구매할 때 지원하는 약 7500달러(약 1000만원) 보조금 지원 대상을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로 한정한 법 조항을 한국 등 ‘대미 FTA를 맺은 국가’로 수정한다는 등의 목표를 갖고 외교전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며 “정부가 IRA 통과 이전에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의 IRA에 대한 대응은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외교전은 장기화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미 후 귀국한 정부 대표단의 안성일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번 달 초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를 계기로 공동 협의 창구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미국 측도 법 자체가 입법부 사안이고 통과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분석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의존도 낮추려 고심하는 K배터리…미국·유럽 완성차기업과 합작 투자

미국에서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양극재·음극재 등 배터리 주요 부품도 북미에서 제조되는 비율이 2024년부터 60%를 넘어야 한다. 이후 연간 10%씩 비율이 높아져 2028년에는 100%까지 확대된다. 

리튬,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원재료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공급받거나 북미 지역 내에서 재활용된 것만 허용된다. 그나마 이 비율도 2024년 50% 이상을 기준으로 매년 10%씩 상향돼 2026년 말 이후에는 80%를 넘어야 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원자재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산화리튬과 코발트, 천연 흑연 수입액은 전체 수입액 중 중국이 모두 80% 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배터리3사는 최근 완성차업계와 합작법인 등을 통해 생산 거점 확대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와 캐나다에 짓기로 한 합작법인의 사명을 ‘넥스트스타 에너지’로 정하고 4조 8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하반기 착공을 시작한다. 2024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미국에 지은 첫 합작 공장이 시제품 생산을 시작한다. 이는 양사가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에 대한 설립 계약을 맺은 지 약 2년 8개월 만이다. 최근 발효된 미국 IRA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행보로 보인다.

SK온은 북미뿐만 아니라 포드와 유럽, 터키에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유럽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섰다. SK온은 지난해 포드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 ‘블루오벌에스케이’를 통해 미국 최대 배터리 합작 공장 설립에 착수했다. 켄터키에 86GWh, 테네시에 43GWh 규모 배터리 공장을 각각 건설하고 있고 2025년 가동이 목표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미국에 첫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부지를 선정하고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이 합작법인에는 25억달러(약 3조 1262억원)가 투자되며 올해 말 착공에 돌입해 2025년 1분기 가동할 예정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최근 배터리업계가 완성차기업들과 손을 잡는 것은 IRA에 대응하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며 “IRA가 아니더라도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배터리업계의 수입선 다변화와 대체 생산이 절실하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완성차기업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목표로 하고 있어 배터리기업들이 잠재적인 리스크를 가질 수도 있다”면서 “그럼에도 배터리기업 입장에서는 완성차기업과의 합작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이들 자동차기업들에게 직접 판매되는 구조를 통해 확실한 시장 선점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