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제2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제2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지난 7월 19일 금융위원회는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첫 번째 혁신과제로 선정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이번에 정부가 검토하는 것은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소유에 대한 규제를 다소 풀어주는 것이다.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이 자회사로 둘 수 있는 업종은 은행업감독규정에 열거된 15개 금융 관련 분야로 한정된다. 금융위는 현재 은행의 비금융 자회사에 대한 지분투자 한도 15%를 완화하고, 업종 제한없이 자기자본 1% 이내 투자를 허용할 방침이다.

전업주의 규제도 완화될 전망이다. 은행법은 은행의 업무를 고유업무와 부수업무로 구분하고 있다. 부수업무는 은행업무와 연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임시로 2년간 허용되며 2년을 연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도입된 것은 1961년 군사정부가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은행 지분을 모두 환수하면서부터이다. 1982년 은행법을 개정해 대기업이 민영화된 은행의 지분을 8% 초과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법제화됐다. 현재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은행 주식의 4%를 초과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산분리를 법으로 강력하게 제한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등으로 수가 많지는 않다. 미국은 은행지주회사법에서 은행을 지배하는 회사를 은행지주회사로 정의하고 이 회사는 은행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지분소유 한도를 차등적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에는 비금융회사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지는 않지만, 지분을 늘릴 때마다 일정 비율별로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유독 금산분리, 특히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에 엄격한 것은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 때문일 것이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의 편법을 통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은행마저 소유한다면 계열사에 대한 지원, 기업승계, 무분별한 투자 등에 사금고처럼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은행의 중요성 때문에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은행이 산업자본을 소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은행은 기업의 신용이나 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자금을 분배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은행이 특정 기업을 소유하게 되면 적정한 평가 없이 자금을 지원할 유인을 갖게 된다. 은행의 모니터링 기능이 훼손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꾸준히 도전을 받아왔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금융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9%로 높였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국내 은행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주체는 산업자본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논리적 근거였다. 

다만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들고나온 박근혜 정부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를 4%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핀테크의 부상은 금산분리의 원칙에 또 한번의 압력을 가한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금융거래가 활성화되고 해외에서 물리적 공간이 없는 인터넷은행이 출현하면서 국내에서도 동일한 유형의 은행이 나타나지 않으면 기술의 발전에 뒤처진다는 비판이 높아진 것이다. 

정부는 인터넷은행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서둘렀고 이 과정에서 금산분리의 규제를 살짝 비켜간다. 정보통신기업에 한해서 인터넷은행의 지분 보유 한도를 34%까지 늘린 것이다. 다만 이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30대 그룹의 참여는 원천봉쇄가 됐다.

이 밖에도 IT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봇물 터지듯이 나타났다. 지급결제, 송금, 대출, 금융데이타 분석, 금융상품 추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새롭고 편리한 서비스가 출현했고 특히 플랫폼 기업은 자신의 고객기반을 이용하여 업무를 금융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에 따라 최근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을 통해 IT기업에도 입출금 등의 지급서비스를 개방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들 기업도 계좌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은행이 수시입출식 통장을 통해 제공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 예금·대출 업무는 제외되지만 은행의 직전 단계쯤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충분한 검토를 거쳐서 추진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금법 개정을 통해서 허가를 얻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에게 예치된 이용자 자금은 예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다.

개정안에 따르면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이용자 자금의 50~100%를 고유재산과 분리해 제3자 은행 등에 별도 예치해야 하고 지급보증 보험 가입도 의무화될 예정이다. 그러나 보증보험에 가입한 이용자 자금은 사업자가 직접 관리할 수 있으며, 자금 유용이 일어날 경우 보험사로 위험이 전가될 수 있다. 이용자 보호 수단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IT기업의 금융산업 진출 범위가 은행의 코앞까지 와 있는 상황에서 이번 금융위가 취한 은행의 비금융자회사 소유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는 맞불 성격이 강하다. 상대방이 내 영역을 침범하니 나도 상대방의 영역을 공격하겠다는 의도이고 정부가 그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조치가 타당성이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우선 5대 금융지주회사에 속한 대형은행들은 분기별로 1조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먹거리를 찾아 새로운 사업영역을 발굴해야 할 비상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혁신금융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알뜰폰이나 배달앱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으나 이것이 과연 혁신적인지, 기존의 금융서비스와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은행에 대한 업무영역이 완화될 경우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가상자산서비스업에 대한 진출이다. 

현재 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해주거나 가상화폐를 맡아서 보관하는 수탁회사에 투자하는 정도로 관여하고 있지만 정부의 규제완화가 실현되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인수해 운영하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가상자산업에 대한 규제가 미비한 상황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위험이 크게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은행의 운용자산에서 위험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위험이 현실화되면 예금을 보전하기 위해서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IT기업의 금융업 진출과 이에 대항하려는 금융기업의 역공은 제도적 변화에 대한 요구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업이 가지는 공공성과 중요성 때문에 이 업종은 역사적으로 매우 엄격한 규제에 놓여 있었다. 

혁신에 대한 작은 논리로 그러한 규제의 둑을 낮출 경우 과연 범람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충분히 따져보아야 한다. 제도가 기술의 흐름에 뒤처질 위험보다 섣부른 규제완화가 금융의 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훨씬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