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반짝 스타’ 한계 딛고 재기의 날개 펼쳐

프로당구 선수 서한솔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서한솔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서한솔(25·블루원엔젤스) 선수는 차유람의 뒤를 잇는 당구계의 ‘얼짱’ 스타로 꼽힌다. 본인은 ‘열정소녀’, ‘인간 비타민’이라는 별명을 선호하지만 팬들은 ‘당구계의 한가인’으로 즐겨 부른다. 물론 외모에만 관심이 쏠리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프로 당구선수로서 팬들의 관심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마울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늦깎이’로 데뷔해 아직 채워야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깜짝 준우승 이후 부진의 늪에 허덕여 마음고생도 깊었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눅 들지 않고 ‘패기’를 앞세워 묵묵히 연습에 매진했다. 밝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장점으로 내세운 그는 특유의 ‘해피 바이러스’를 무기 삼아 올해 LPBA 우승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용 아티스트 꿈 접고 선택한 큐

서한솔은 운동이 취미였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 배드민턴, 탁구, 줄넘기 등에서 학교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즐겼다. 단지 운동이 재미가 있었을 뿐 본격적인 선수를 꿈꾸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결국 여느 소녀들처럼 미용 아티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헤어, 메이크업, 네일아트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고등학교 미용과를 선택한 것이다.

“미용 아티스트가 워낙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어서 저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해당 분야를 접하고 나서는 흥미가 반감하기 시작했어요. 각각의 분야마다 체계적으로 공부할 내용이 많아 단순히 손재주만 발휘하면 될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거죠.”

미용에 대한 관심이 데면데면하던 서한솔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학교 친구와 함께 포켓볼을 치러 당구장을 찾았다. 그 친구가 이우경(SK렌터카) 선수다. 서한솔이 대한당구연맹 선수로 먼저 등록했지만 이우경은 프로리그가 출범한 이후 LPBA 선수로 뒤늦게 출발했다.

프로당구 선수 서한솔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우경이와 우연히 접한 포켓볼을 치다가 몇 개월 지나서 4구에 흥미가 생겨 종목을 전환해서 취미를 즐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나자 지인을 통해 국제식 대대를 처음 접하게 됐죠. 중대와 달리 넓직한 대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좀 흥분이 되더라고요. 또 당구장 분위기도 정숙하고 깔끔한 점이 마음에 들어 그 당구장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서한솔이 이우경과 함께 옮긴 당구장은 인천 부평의 빌몬스터(옛 공플레이) 당구장이다. 마침 이우경의 친구가 빌몬스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같은 또래들이 뭉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우경의 친구가 지금 LPBA에서 활약하는 허지연 선수이다. 빌몬스터가 ‘LPBA 3총사’ 친구들을 탄생시킨 셈이다.

빌몬스터에서 서한솔은 첫 스승과도 조우했다. 권혁민(PBA·자이언트당구클럽대표) 선수가 직접 운영을 해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서 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대대입문 1년 6개월 만에 스승의 권유로 대한당구연맹 선수로 등록했다. 당시 대대 점수는 20점. 선수로 등록하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낮았다. 하지만 권혁민은 실력이 좋은 선수들과 자주 경기를 경험하면서 배워야 실력이 늘 수 있다고 설득했다. 선수층이 얇은 여자 선수들의 저변을 넓히려는 의도도 작용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당구 선수로 생계가 될까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당구 방송과 관련한 리포터로 부업을 해도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에 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합에 임하다 보니 제가 열정과 희열을 느끼기 시작하더라고요. 물론 정상권 선수들과의 격차가 크다는 점도 몸소 체험을 했지만, 그것이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업을 따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지고 시합에 몰두하기 시작한 거죠.”

두 번의 깜짝 준우승으로 스타덤 올라
이후 깊은 부진에 빠져 남몰래 ‘눈물’

프로당구 선수 서한솔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선수 등록 이후 기대주로 성장하던 서한솔은 1년 4개월 만에 결승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9년 4월 열린 ‘인제오미자배 3쿠션 페스티벌’ 여자부문 결승까지 진출해 당시 아마추어 정상급 실력자인 김민아(NH농협카드) 선수와 맞붙어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나마 얇은 선수층을 가진 여자 당구계에 외모도 뛰어난 신인이 혜성처럼 등장하자 매스컴의 관심도 남달랐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고 결승까지 간 겁니다. 선수 등록 이후 1년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해서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즐기면서 시합에 임하다가 어느 새 결승까지 올라간 거죠. 앞선 시합에서 내가 친 점수보다 한 점이라도 더 치자는 나만의 목표에만 치중해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 운이 좋게도 작용했다고 봐요.”

서한솔은 그해 프로 전향 후 개막 시즌 두 번째 대회인 ‘신한금융투자 LPBA 챔피언십’에서도 덜컥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임정숙(SK렌터카) 선수와 치른 결승까지 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는 8강전이었다.

“당시 8강까지는 서바이벌로 치르는 방식이어서 김가영, 이미래 선수 등과 한조를 이뤘어요. 두 선수가 워낙 강자였기 때문에 사실 큰 욕심 없이 경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경기를 마치고 점수를 따져보니 이미래 선수와 동점이 나왔는데 제가 ‘하이런’에서 뒤쳐져 탈락했어요. 그런데 잠시 후 연락이 와 채점에 오류가 있어서 제가 올라갔다는 거예요. 이미래 선수와 여섯 번째까지 가는 하이런 점수를 비교한 결과 기사회생한 거죠.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의외의 결과가 나와 돌아가는 길에 저도 모르게 방방 뜰 정도로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짧은 구력에도 결승까지 오르자 서한솔의 재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는 3차 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이후 8강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부진의 긴 터널로 진입한 것이다. 매스컴과 팬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심적 부담감과 압박감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그는 냉정하게 자신을 진단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된 실력이 드러난 거죠. 사실 큰 부담감 없이 시합에 임하다가 운도 좀 따라줘서 깜짝 성적을 냈던 거지 제가 냉정하게 판단하면 상위권 입상에 들 만한 실력이 아니었거든요. 경기를 많이 치르다 보니 아직 부족한 제 실력이 탄로가 난 셈입니다.”

평소 밝은 성격의 서한솔이지만 성적 부진이 계속 이어지자 마음고생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모르게 혼자서 눈물을 흘리기도 다반사였다.

‘롤 모델’ 스롱 피아비의 격려 큰 힘
리더 엄상필의 지도로 당구 원리 이해

선수등록 후 첫 준우승, 프로등록 후 결승전 치르는 모습, 22-23시즌 PBA 팀리그 블루원 엔젤스 선수단 출정식.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선수제공

서한솔은 블루원엔젤스 팀에 합류했지만 부진한 성적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팀리더인 엄상필 선수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엄상필은 흔쾌히 응했다. 마침 소속사에서도 엄상필에게 막내인 서한솔을 세심하게 돌봐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엄상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당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엄 선배가 가르칠 때는 정말 엄한 편이어서 무섭기도 했어요. 어떤 배치의 특성과 맞지 않는 스트로크를 하거나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할 판단이나 움직임이 나오면 매우 엄격하게 지적을 하시거든요. 레슨도 시스템보다는 공의 원리, 패턴 등을 중심으로 알려주셨죠. 그 덕분에 공 배치가 오면 한 눈에 이렇게 공략을 해야겠다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배치를 풀어내는 스킬이 많이 늘었습니다. 시스템은 강민구 선수한테 많이 배웠고요.”

서한솔은 ‘롤 모델’로 같은 팀원인 스롱 피아비 선수를 꼽는다. 조국인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겠다는 포부를 가진 피아비가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과 경기에 임하는 투지 등이 본 받을 만 하다는 것이다. 

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선수도 피아비 선수였다. 팀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승률을 높이기 위해 서한솔이 경기에서 배제됐다. 대신 피아비가 여자선수의 몫을 다 감당했다. 서한솔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가장 큰 위로를 해주고 힘이 돼 준 선수가 바로 피아비였다. 

“팀리그 플레이오프에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수긍했지만 마음 속으로 박탈감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 피아비 선수의 격려와 위로의 말이 큰 힘이 됐어요. 저한테 ‘절대 상처를 받지 마라. 내가 볼 때 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해줬던 거죠. 피아비 언니한테 공도 많이 배웠어요. 기회가 될 때마다 추켜세워 주는 바람에 오히려 제 어깨에 바람이 들 정도예요.”

그는 블루원엔젤스 소속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실력이 부족한 자신을 선택한 것도 그렇지만 팀원은 물론 회사에서도 너무 잘해줘서 팀 분위기가 너무 좋은 점이 행운이라고 여긴 것이다. 

“팀리그의 새로운 경기 방식인 여자복식에서 한 조를 이룬 김민영 선수와 호흡을 잘 맞춰 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제는 빠지지 않고 매 번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여건이 된 거잖아요. 기본기기 탄탄해 기복이 심하지 않은 김민영 선수와 최강의 복식조가 되도록 더 노력해야죠.”

당구선수 진로를 반긴 부모님
“결승 때 경기장에 모시고 싶어요”

프로당구 선수 서한솔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구 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자 부모님은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특히 아버지께서 평소 조재호·최성원 선수의 ‘광팬’이셨거든요. 제가 경기를 잘 한 날이면 아버지께서 친척들한테 마구 전화를 돌리세요. 다섯 살 위의 언니도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용돈을 두둑하게 주면서 격려해 주죠. 장남인 오빠도 마찬가지고요. 부모님이 아직 경기장을 찾지는 않았는데 제가 결승에 오르면 가족 모두를 시합장에 초청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애가 깊은 삼남매로 자란 그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결혼해 아이 3명을 낳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서한솔은 지난 시즌까지는 팀리그에 속할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동안 부진의 세월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삼아 이제는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우승을 노릴만한 실력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아요. 내가 노력한 만큼 다른 정상급 선수들도 노력을 할 텐데 격차를 언제 줄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라면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할 만큼 실력 향상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야 하죠. 30점 이상인 동호인 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연습에 열중할 생각입니다.”

서한솔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연습장에서 보낸다. 동호인들과 게임을 통해 감각을 익히고 손님이 없는 한 밤중에 집중적으로 자신만의 패턴을 연습한다. 

그의 취미는 ‘노래 부르기’이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래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동호인을 통해 보컬 레슨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실력도 좀 향상돼 혼자서 코인 노래방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었다. 

“만약 제가 우승을 하는 날이 오면 노래 부르는 세레머니도 할 수 있어요.”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