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제공)
(사진=픽사베이 제공)

골프만큼 남을 속이기 쉬운 경기는 없다. 그리고 골프만큼 속인 사실이 드러났을 때 심한 경멸을 받는 경기도 없다.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법은 악인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지지만 골프 룰은 고의로 부정을 범하는 플레이어가 없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골프를 ‘신사의 운동’으로 즐기는 그들에겐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대의 골퍼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俗人(속인)골퍼’들은 기회만 생기면 남의 눈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적당주의 혹은 무지, 남에게 너무 가혹하게 하지 못하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운드하는 4명 모두 공범이 되어 룰을 어기는 경우는 허다하다.

‘구성(球聖)’으로 불리는 불세출의 아마 골퍼 바비 존스는 1925년 US오픈에서 골프사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차 선두로 우승을 목전에 둔 그는 마지막 홀 러프에서 어드레스 하는 순간 볼이 움직이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경기위원회에 자진 신고했다. 그는 스스로 부가한 1벌타로 동점이 되어 연장전에 들어가 패했다.

이를 두고 그의 친구이자 언론인인 O.B 킬러는 “나는 그가 우승하는 것보다 그를 더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가 우승한 것보다 그가 스스로 벌타를 부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1타가 없었더라면 플레이오프 없이 존스의 우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사건은 바로 존스의 자진 신고”라고 기록했다.

이 사건을 두고 매스컴이 칭송하자 존스는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신들은 내가 은행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하려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호쾌한 장타와 미모로 여자골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 윤이나(19)가 경기 중 부정행위와 관련, KLPGA투어 대회 출전 중단을 선언했다.

윤이나는 최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저의 미성숙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깊이 들여다 보겠다.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나은 선수 그리고 사람이 되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성적에만 연연했던 지난날들을 되짚어 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신인으로 지난 7월 17일 에버콜라겐 퀸즈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승을 올리며 골프 팬들의 시선을 모은 윤이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의 부정행위를 요약하면 오구(誤球) 플레이를 경기 중 신고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 뒤 의혹이 일자 한 달 만에 부정행위를 시인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간략히 재구성해보자.

지난 6월 16일 충북 음성 레인보우힐스CC에서 열린 제 36회 DB그룹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 1라운드에서 윤이나는 마다솜(23) 권서연(21)과 함께 한 조를 이뤄 오전 6시35분 10번 홀에서 티오프했다. 15번 홀에서 윤이나가 티샷한 공이 오른쪽 러프에 빠졌다. 러프에서 공을 찾던 중 공이 발견됐고 윤이나는 이 공으로 플레이를 계속했다.

그러나 이 공은 윤이나가 친 공이 아니었고, 동반자인 마다솜, 권서연의 공도 아닌 로스트 볼이었다.

선수가 남의 공으로 플레이할 경우 실격 처리된다. 규칙대로라면 3분 안에 자신의 공을 찾지 못하면 1벌타를 받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플레이해야 한다. 윤이나로선 로스트 볼이 자신의 볼이 아님을 확인하고 1벌타를 받고 티샷을 다시 하는 것이 규칙에 맞는 행동이다. 

그러나 윤이나는 로스트 볼로 플레이를 계속했고 2라운드까지 경기를 진행해 컷 탈락하며 대회를 마쳤다.

이때까지도 윤이나는 오구 플레이 사실을 대회 주최 측에 신고하지 않았다, 소속 매니지먼트사인 크라우닝에 따르면 윤이나 선수가 규정 위반 사실을 인정한 것은 한 달 후인 7월 16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 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되자 소속사가 윤이나 선수에게 이 사실을 직접 확인, 17일 대회 주최 측에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통보했다.

윤이나는 공식 사과문에서 “앞쪽 깊은 러프에 공이 있다는 주변의 말에 따라 그것이 저의 공인 줄 오해하고 플레이를 진행했다”며 “그러나 곧 저의 공이 아님을 알게 됐고, 처음 겪는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결국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플레이를 이어 갔다”고 해명했다.

사과문 내용에 관계없이 한 달이나 지나 신고한 것을 두고 만약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가려 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여자오픈를 주최한 대한골프협회는 윤이나에 대해 대회 실격 처리했지만 남의 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속인 플레이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영구 출전 정지 등 중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대한골프협회, KLPGA가 어떤 징계를 내릴지 궁금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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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