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맏형’ 자처하며 궂은일 도맡아

임정완 PBA 경기위원장. ⓒ이혜영 기자
임정완 PBA 경기위원장. ⓒ이혜영 기자

 

한참 선수로 뛸 전성기의 나이에 선수 생활을 잠정적으로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도 생업을 거의 포기한 채 말이다. 당구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설립한 대한당구선수협의회 회장을 거쳐 PBA 경기위원장을 떠맡은 임정완(50) 선수의 이야기다.

당구선수협의회는 지난 2017년 결성된 후 이듬해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300명이 넘는 당구 선수가 가입됐다. PBA 출범 과정에서 선수들의 프로리그 참가를 제재한 대한당구연맹(KBF) 및 세계캐롬연맹(UMB)과 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는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프로리그 출범을 전후해 압박을 받은 책임감과 부담감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숙명’의 과제였다. 당구선수협의회의 95%가 PBA 소속이다 보니 PBA선수협회를 별도로 설립했고 회장직을 이어 맡았다. 선수들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던 임정완은 주변의 권유로 지난 6월 PBA 경기위원장으로 임명돼 또 다른 봉사의 길을 걷게 됐다. 당구 선수 임정완이 아닌 경기위원장 임정완의 고민과 포부를 들어보았다.

“경기력 향상이 최선의 목표”
다양한 용품의 세팅에 만전 기해

임정완 PBA 경기위원장. ⓒ이혜영 기자

“전임 남도일 경기위원장께서 워낙 길을 잘 닦아 놓은 성과가 커서 후임 경기위원장을 맡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분들의 추천도 많았지만 선수로서 성적을 내고 싶다는 열망 등으로 고민이 깊었는데 PBA선수협회 이완수(인천체육회 감독) 수석부회장이 강하게 밀어붙여 거절하기가 곤란했어요. 이 부회장이 1부 리그는 물론 2부, 3부 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을 구석구석 함께 돌아다닌 현장 경험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거죠.”

사실 경기장 섭외와 테이블 세팅, 현장마다 다른 환경과 그에 따른 고충 해결 등의 현장 문제는 PBA 사무국도 선수 출신인 임정완과 이완수의 경험을 인정할 정도였다. 5년 차로 접어드는 PBA의 안착을 위해서라도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경기장 환경과 운영을 세팅하는 작업은 가장 중요한 행정 업무이다.

임정완의 또 다른 고민은 선수협회 회장직을 그만두면 누구를 후임으로 맡길 것이냐의 문제였다. 일단 PBA 선수위원장을 맡은 선배 황득희 선수를 찾아갔다. 선수협회와 선수위원회의 업무가 중복된 면도 있고 후배 선수들로부터 인망이 높은 황득희의 리더십이라면 선수협회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다만 자신의 시간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업무를 부탁하는 셈이어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황득희는 후배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 덕분에 임정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기위원장을 맡게 됐다.

“경기위원장으로서 우선 목표는 테이블 세팅의 안정화입니다. PBA 출범은 국산 당구용품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죠. 국내에서 지명도가 높은 해외 브랜드인 가브리엘 테이블도 3쿠션 월드컵 대회를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 효과를 얻은 이점이 컸어요. 그 이전에는 오히려 버호벤 테이블이 더 인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국내산 테이블이나 용품 사용을 확대해 당구산업의 저변을 확대하면서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팅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죠.”

PBA는 2020~21 시즌부터 대회에서 사용하는 당구대, 당구천, 당구공, 디지털 스코어보드를 공식 경기용품으로 선정하고 있다. 지난 시즌의 경우 당구대는 ‘프롬’, 당구천은 ‘고리나’, 당구공은 ‘헬릭스’, 스코어보드는 ‘빌리존’을 사용했다. 2022~23 시즌에는 기존 용품 외에 당구천 ‘시모니스’, 당구공 ‘아라미스’가 새롭게 합류한다. 시모니스와 아라미스를 제조하는 살룩은 각각 벨기에를 대표하는 당구용품 회사들이다. 국내산 용품들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난이도 높은 초구 배치 변경 방안도 논의 중” 

임정완 PBA 경기위원장. ⓒ이혜영 기자

아라미스 공은 국내 선수들도 20~30년 전부터 사용해왔다. PBA 출범 이후 그보다 무거운 국산 헬릭스 공에 선수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헬릭스와 아라미스 공을 같이 사용한다면 선수들의 적응 문제는 없는 것일까.

“선수들과 문의를 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더니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선수들은 무거운 공을 취급하다 상대적으로 더 가벼운 아라미스를 쳐보니 공 다루기가 더 수월하다고 해요. 아마 수십년 동안 아라미스로 공을 쳤던 것을 몸이 기억해서 더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8월 팀 리그에서 아라미스가 첫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용품 외에도 경기위원장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많다. 공격 제한시간 규정도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시즌까지는 제한시간이 팀 리그는 30초, 개인 투어는 35초였다. 이번 시즌부터는 팀 리그와 개인 투어 상관없이 공격 제한시간을 35초로 통일했다.

임정완은 선수들과 미팅을 한 결과 30초 룰은 선수들이 경기의 질과 개인 애버리지를 높이기가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35초 룰을 실제 적용해 보니 경기 시간은 큰 차이가 없고 선수들의 애버리지가 오히려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초구 배치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도 의견을 모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많은 선수가 난해한 초구가 배치되면 초구를 잡은 이점도 없어지고 애버리지도 낮아져 경기의 흥미를 떨어트린다는 의견을 제시한 탓이다.

“충분히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초구 성공률이 평균 50%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좀 낮은 편이긴 하죠. 원래 프로리그 출범하면서 아마추어 경기보다 난이도가 높고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시작한 PBA식 초구 배치들인데 그 역할은 충분히 해왔다고 봐요. 하지만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흥미를 높인다는 관점에서 초구 성공률을 70~80%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현재 논의 중입니다.”

이 밖에 팀 리그 세트제는 남자 11점, 여자 9점으로 바뀐다. 현재는 개인 투어처럼 남자 15점, 여자 11점제이다. 또한 6세트 무승부 제도를 폐지하고 7세트로 승부를 가리며 여자 복식을 새로운 팀리그 게임 조합으로 추가했다. 선수들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선수들이 팀 리그에 속할 기회를 더 확대하자는 취지다.

LPBA의 경우 아직도 서바이벌로 예선을 거치는 방식을 놓고 임정완은 조금 아쉬워한다. 현실적으로 LPBA 2부 리그를 운영할 여건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자 선수들의 경우 남자 선수들에 비해 선수층이 얇고 상하위권의 실력 차이도 크게 나는 편이어서 128명 체제도 빠듯한 편입니다. 물론 젊은 선수들의 도전이 계속 늘어나고는 있지만 2부 리그를 따로 운영할 만큼 선수층이 두껍지도 못하고 후원을 받는 문제도 쉽지 않죠. 단일 리그로 예선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처럼 서바이벌 방식을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포차’ 사장, 지사장 경험이 자산
‘똘이장군’ 김정균이 멘토이자 스승

임정완 PBA 경기위원장. ⓒ이혜영 기자
임정완 PBA 경기위원장. ⓒ이혜영 기자

임정완은 다시 큐를 잡는 것이 당구 인생의 마지막 목표이다. 지금도 선수 신분이기는 하지만 업무량이 많아 연습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경기위원장을 맡고부터는 큐를 잡을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실 선수협회 회장을 맡을 때도 선수 생활에 차질이 많았죠. 14년째 운영하는 당구장 영업도 방치하다시피 했어요. 지난해는 코로나 사태도 있었지만, 가게를 비운 날을 세어 보니 무려 214일이나 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다시 경기위원장을 맡게 됐으니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죠. 1부 리그 경기가 종료되면 곧바로 다음날 2부, 3부 리그 경기 섭외와 진행을 위해 돌아다녀야 하니 큐를 잡을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죠. 그래서 경기위원장을 그만두면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 위해 큐를 다시 잡는 것이 목표가 된 겁니다.”

임정완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NK당구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그가 선수로 입문하고 선수협회를 이끌게 된 것은 이 당구장에서부터 시작된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단골 당구장이 문을 닫아 현재 운영하는 당구장을 처음 방문해 본격적으로 대대 3쿠션의 길로 들어섰다. 유일한 취미가 당구였던 그는 다양한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강남의 한신포차 건너편에서 제법 유명했던 포차를 운영했으며 형이 세운 물류회사의 중국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때 당구장에서 만난 분이 ‘똘이장군’으로 잘 알려진 김정규 선생님이었어요. 한국 당구계의 레전드인 이상천 선수와 어깨를 겨룬 김 선생님과 친해져서 매일 한 두 게임을 치르면서 실전 교습을 받았죠. 당구를 치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상황을 물어보는 과정을 반복하니까 제 당구 실력도 덩달아 높아졌어요. 김 선생님은 제가 지금도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는 은인이십니다.”

2005년 34세 때 처음 김정규 선수를 만난 임정완은 그의 가르침에 힘입어 이듬해 서울당구연맹에서 개최한 동호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선수 등록 자격을 취득했다. 

임정완이 선수협의회의 수장을 맡고 경기위원장으로서 행정 업무까지 뛰어든 것은 사람들을 주로 상대했던 그의 사회 경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규의 고언이 그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경기위원장을 맡을 것인지 고민을 하던 차에 김 선생님께서 현재 상황에서 맡을 적임자가 저밖에 없다고 권유를 했어요. 그러면서 제게 ‘퇴임 후를 준비해라’라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본인께서는 아시안게임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후배 선수들과 시합을 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해 선수를 은퇴하고 아카데미를 열었는데 아무도 그 결정이 고맙다고 여기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도 경기위원장을 그만둘 때까지 잠시 큐를 내려놓지만, 반드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라고 충고를 하셨습니다.”

동료 선수들을 위한 밑거름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임정완은 선수들이 더 자부심을 품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주길 희망했다. 제대로 판이 깔린 프로리그에서 세계 당구계를 선도하는 전사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존 UMB 체제의 월드컵 대회에서 비유럽 선수가 포인트를 쌓고 시드 배정을 받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PBA는 누구나 우승의 열매를 쟁취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가능하죠. 프로리그 적응에 아직 힘들어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미국 마이너리그의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여건이 훨씬 좋은 편입니다. 다비드 사파타(블루원엔젤스)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스페인의 영건들이 속속 참여하고 응우옌 꾸억 응우옌(하나카드) 선수처럼 베트남의 정상급 선수가 PBA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그 연장선이죠. 저는 임기 동안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우리 선수들도 마음껏 기량을 발휘해줬으면 해요.”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